

지금의 기술은 행위를 대신한다.
삶의행위를 대신하려는 기술의 환상은
행위로부터 배울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도시에서의 삶의방식은 획일화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행위패턴을 만든다.
그것은 주변이 소비라는 패스path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면서 이 구조에서 도망치는 것은 메트릭스밖을 보는것처럼 쉽지 않다.
앉아서 사는 시대.
우리들은 작은 월급이라도 더 높이려고 더 오래 앉아있고,
하기 싫은 술접대도 앉아서 견뎌내야하며 피곤한몸을 이끌고 택시에앉아서 이동하며
집에 쓰러져 들어온다. 대부분의 전문직은 스팩을 늘리려면 더욱 앉아 있어야만 하고
월급의 소비행위는 대부분은 앉아서 이루어진다.
연봉이 높은 직종일 수록 삶의 행위패턴은 획일화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리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앉아서 보내게 되었다.
편리하고 편안하게에 대한 집착은 의도와는 반대로
활동적인 인간행위를 제한하며 억압하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 삶의 불행은 우리가 활동적인 삶의행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데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생명력을 죽이고, 기름을 사기위해서
엔진이 고장나는걸 허용하는 꼴이 되었다.
이 행위로 부터 배우는 것은 소비에대한 지식 즉 소비하는 물건에대한 지식과
어디서 무엇을 더싸게 구입할수 있는지에 대한 유통에대한 지식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신의 삶보다 자신의 물건에 대해서 더 잘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디자인된 길을 걷기때문이다.
행위는 행위자의 상태를 만들고
행위자의 상태는 행위자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삶의 질은 소비의 질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행위에서 나온다.
그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행위자 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것은 풍요로운 경제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행위를 어떻게 다시 찾는냐 이다.
물질의 소유만을 중심으로한 삶의방식은 행위의 풍요로움을 모두 희생시킨다.
뿌리가 없이 둥둥 떠다니는 소비행위들은 아무리 오랜시간이 지나도 삶이 쌓이질 않는다.
당신은 일을 끝마치고 맘편하게 쉬어 본적이 있는가?
잠깐동안의 휴식도 쫒기는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달려야하는 삶.
돈이 있는사람은 행할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불안해 행하지 못한다.
획일화되고 습관화된 소비패턴이 일상의 행위에대해
심한 편견을 낳고 이로 인해 소비하지않는 행위에 대해선 무의미하거나 귀찮아 한다.
물건을 사는 사람은 물건 만을 소유하지만
행위를 하는 사람은 삶을 소유한다.
그처럼 삶의 행위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신의 내면을 만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행위를 통해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서를 배울 수 있으며
행위를 통해서 삶을 조절하는 균형감각을 배울 수 있으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삶의방식을 찾는다면 그것은
삶의 풍요로운 행위를 기반으로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는 삶의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2005.5.23
RaMo




